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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소설

[소설 리뷰]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시마다 소지(미스터리/추리소설)

by 김진격 2026.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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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 리뷰이므로 약간의 스포성 발언이 있을 수 있으나, 줄거리 반전 등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작성하였습니다.

 

[서평] 지극히 사소한 비극이 쏘아 올린 역사와 인간의 거대한 궤적 —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시마다 소지의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본격 미스터리의 정교한 논리와 사회파 미스터리의 묵직한 메시지가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한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기괴하고 거대한 물리적 트릭을 주로 선보이던 작가는, 이 작품에 이르러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이라는 어둡고 참혹한 역사적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무관해 보이던 아주 작고 사소한 사건들의 연결고리가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비극으로 엮여 들어갈 때의 카타르시스는 독자에게 단순한 추리의 재미를 넘어 가슴을 후려치는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줄거리

기상천외한 트릭의 열쇠는
하늘마저 움직인 남자의 마음이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쿄의 상점가에서 부랑자 노인이 소비세 12엔을 요구하는 가게 여주인을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치매에 걸린 걸인에 의한 충동살인이 분명하지만 요시키 형사는 어쩐지 석연치가 않다. 유아유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써 26년간 비참한 복역 생활을 했던 노인,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노인의 온화한 성품과 소설을 쓸 정도로 지적인 인물임을 증언한다. 한겨울밤 열차 안, 밀실인 화장실에서 자살한 피에로의 시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이야기, 하얀 거인에 의해 하늘로 날아오른 열차 등 괴기스러우면서도 환상적인 소설을 쓴 노인. 탐문 중 요시키 형사는 노인이 쓴 기묘한 소설이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되고 곧이어 충격적인 진실과 조우하는데…….
 

​1. 장점: 사소한 파편들이 거대한 기적의 고리로 맞물리는 카타르시스

​이 소설의 가장 독보적인 플롯적 쾌감은 전혀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극단적인 사건들이 점차 하나의 선으로 수렴해 가는 구조에 있다.
​이야기는 어느 날 한 노숙자가 소비세 몇 십 원(엔) 때문에 소비세 지불을 거부하다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듯한, 지극히 사소하고 초라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기이한 소동을 시작으로 과거의 기차 유괴 사건, 하늘을 나는 듯한 시체 등 도무지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는 기괴한 사건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인다.
​작가는 이 파편화된 수수께끼들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단 하나의 거대한 진실로 묶어낸다.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듯, 연결고리가 전혀 없던 사건들이 한순간에 일렬로 정렬되며 진상이 드러날 때의 지적 카타르시스는 가히 압도적이다.

 

​2. 장점 2: 역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한 사회파 미스터리의 정점

​이 작품이 단순한 오락 소설을 넘어 불후의 명작으로 추앙받는 진짜 이유는, 본격 미스터리의 대가가 일본 사회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인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의 비극을 타협 없이 고발했기 때문이다.
​탐정 요시키 타케시가 사건의 내막을 파헤칠수록, 소설은 화려한 트릭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두운 정글과 탄광 속에서 스러져간 조선인들의 피 맺힌 고통의 역사로 진입한다. 일본인 작가의 펜 끝에서 탄생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고 진솔하게 그려진 강제징용자들의 삶과 차별의 역사 앞에서는 국경을 넘어선 묵직한 부채감과 슬픔이 밀려온다. 장르의 정교한 논리를 빌려 역사의 외면당한 진실을 목소리 높여 증언하는 이 소설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단 하나의 미스터리"라는 찬사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증명한다.


​3. 아쉬운 점: 기적을 완성하기 위해 '우연'에 기댄 전개 방식

​서사가 가진 거대한 무게감과 반비례하게, 사건의 최종 진상과 플롯의 매듭이 풀어지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우연에 기댄 설계'**가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은 명확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혀 무관한 인물들의 동선이 기막힌 타이밍에 겹치거나, 결정적인 단서가 탐정의 논리적 추적보다는 운명적인 우연의 일치로 손에 쥐어지는 대목들이 존재한다. 거대한 비극의 조각들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작가가 무대 뒤에서 인위적으로 '우연'이라는 치트키를 촘촘히 깔아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사건의 필연성과 인과관계를 철저하게 중시하는 정통 본격 미스터리 마니아들의 시선에서는, 이 기적 같은 우연의 남발이 극의 리얼리티를 다소 떨어뜨리는 아쉬운 균열로 다가올 수 있다.


​총평: 하늘을 움직인 기발한 발상, 시대를 흔들다


​시마다 소지의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기발한 수수께끼와 뜨거운 인류애가 결합했을 때 미스터리가 어떤 예술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걸작이다.
​우연성에 기대어 진상을 풀어나가는 전개상의 사소한 약점이 존재할지언정, 작은 소비세 실랑이에서 시작해 거대한 역사의 침묵을 깨부수는 이야기의 스케일과 진정성은 그 모든 아쉬움을 무색하게 만든다. 부조리한 시대를 살다 간 이들의 한과 아픔을 가장 지적이고 뜨거운 방식으로 위로하는, 추리소설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위대한 마스터피스다.


​한 줄 요약: 우연에 의존한 극적인 전개 방식은 옥에 티지만, 무관해 보이는 사소한 사건들이 기적처럼 엮이는 카타르시스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아픔을 집요하게 고발한 묵직한 메시지가 조화를 이룬 거장의 기념비적 걸작.

 

개인적인 평점

★★★★★★★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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