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리소설 리뷰이므로 약간의 스포성 발언이 있을 수 있으나, 줄거리 반전 등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작성하였습니다.
[서평] 대담한 속임수의 파격, 그리고 본격 페어플레이의 한계 — 《성모》
1. 들어가는 말: 서술트릭을 대놓고 내세운 대담한 도전
미스터리 장르의 수많은 기법 중에서도 '서술트릭(Narrative Trick)'은 작가에게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외줄 타기와 같다. 텍스트 뒤에 숨은 작가가 독자의 선입견과 편견을 교묘하게 이용해 눈앞의 진실을 가리는 이 기법은, 성공했을 때 독자에게 거대한 카타르시스와 소름 돋는 충격을 안겨준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독자를 속이기 위한 치졸한 기만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성모》는 이러한 위험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출간과 동시에 "서술트릭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마케팅을 대놓고 내걸며 독자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작품이다.
'모성(母性)'이라는 지극히 숭고하고도 이타적인 감정을 미스터리의 핵심 주제로 삼은 이 소설은, 참혹한 아동 대상 범죄가 벌어지는 마을을 배경으로 딸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절박한 행적을 쫓는다. 대담한 홍보 문구에 걸맞게 마지막 페이지에서 밝혀지는 반전의 파괴력은 엄청나지만, 동시에 본격 미스터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공정성(Fair Play)'의 관점에서는 깊은 논란과 아쉬움을 남긴다.
2. 줄거리
도쿄 외곽의 아이이데 시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아동의 시신이 발견된다. 전날 집 근처 마트에서 갑자기 사라진 피해 아동은 목이 졸려 살해당한 후 시신 훼손의 흔적까지 있었다. 뉴스에서 사건을 접한 프리랜서 번역가 호나미는 자신의 소중한 외동딸이 무사할 수 없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한편, 경찰은 전력으로 수사를 펼쳐나가지만 범인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취한 행동은…….
3. 장점 1: '모성'이라는 맹점을 파고든 압도적인 반전의 파괴력
《성모》가 미스터리 독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며 거대한 화제를 모은 이유는,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몰아치는 마지막 반전의 임팩트가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린아이를 노리는 기괴한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음산하고도 자극적인 사건을 전면에 배치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딸을 범인의 마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닫는 한 어머니의 서사를 축으로 삼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절박한 심정에 동화되며,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응원하고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여정에 몰입하게 된다.
작가는 '모성애'라는 인류 보편의 감정이 가진 맹점과 고정관념을 정교하게 파고든다. 독자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관계, 시간의 흐름, 행동의 동기들이 마지막 단 한 줄의 진상 앞에서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 소설은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서술트릭을 내세운 작품답게, 충격적인 결말이 드러나는 순간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읽어온 텍스트를 머릿속으로 급격히 반추하게 만드는 장르적 카타르시스만큼은 확실하게 선사한다.
4. 장점 2: 사회적 중대 범죄와 숭고한 감정의 대비가 주는 서스펜스
또한 이 소설은 사회적으로 가장 금기시되는 아동 대상 강력 범죄라는 어두운 소재와, 이를 대비하는 '모성'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대립시키며 극적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
언론과 경찰의 추적, 마을 전체를 감싸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그 속에서 홀로 딸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의 행보는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독서감을 높여준다. 인물들의 감정선이 비교적 또렷하게 묘사되어 있어, 미스터리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입문자라 할지라도 어렵지 않게 극에 몰입하여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흡인력을 갖추고 있다.
5. 아쉬운 점: '공정성'의 궤도를 벗어난 초반부 서술의 치명적 마이너스
그러나 충격적인 반전의 존재감과 스릴러로서의 재미에도 불구하고, 《성모》는 본격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장르 마니아들에게 뼈아픈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바로 서술트릭의 핵심인 '공정성(Fair Play)'의 영역에서 심각한 한계를 노출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서술트릭이란 작가가 단서를 정직하게 다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스스로의 고정관념이나 미스리딩(Misleading)에 빠져 진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즉, 결말을 알고 다시 1페이지로 돌아가 읽었을 때 "아, 작가는 이미 올바르게 서술해 두었지만 내가 오해했구나!"라며 작가의 정교함에 탄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성모》의 초반부 서술은 독자의 자발적인 착각을 유도하는 수준을 넘어, 작가가 악의적으로 독자를 기만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곡해하여 서술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진상을 확인한 뒤 소설의 초반부로 돌아가 문장들을 다시 정밀하게 뜯어보면, 독자가 자연스럽게 착각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문장 자체를 다분히 오해하도록 꼬아놓았거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서술을 고의로 배치했음이 드러난다. 이는 링 위에서 탐정/독자와 동등한 조건으로 지적 대결을 펼쳐야 하는 본격 미스터리의 규칙을 위반한 것에 가깝다.
독자의 미스리딩에 의존한 우아한 트릭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의 악의적인 가공과 정보 은폐에 기댄 속임수라는 점은 이 소설의 평가를 크게 깎아먹는 치명적인 마이너스 요인이다.
6. 총평: 화려한 속임수 뒤에 남은 본격 미스터리의 씁쓸한 잔상
아키요시 리카코의 《성모》는 서술트릭이라는 기법이 보여줄 수 있는 극단적인 반전의 쾌감과, 본격 추리가 지녀야 할 페어플레이 정신의 부재라는 명암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모성'이라는 고정관념을 무기로 독자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결말부의 파괴력은 확실히 독보적이며, 왜 이 책이 서술트릭의 대명사로 자주 거론되는지 입증해 준다. 그러나 추리 과정의 정교함과 문장의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마니아들의 시선에서는, 독자를 향한 악의적인 초반 서술 기만으로 인해 카타르시스 대신 허탈함과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작품은 '독자를 완벽하게 속여 넘기는 반전 그 자체'를 원한다면 더없이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선택이 되겠지만, 틈새 없는 논리와 정직한 퀴즈로서의 본격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라면 다소 아쉬운 입맛을 다시게 만드는 양날의 검 같은 소설이다.
한 줄 요약: 마지막 순간 '모성'이라는 맹점을 파고드는 반전의 파괴력은 엄청나지만, 서술트릭의 생명인 초반부 서술의 공정성을 어기고 독자를 악의적으로 기만한 대목이 짙은 아쉬움을 남기는 양날의 미스터리.
개인적인 평점
★★★★★★★☆☆☆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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