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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소설

[소설 리뷰/서평] 늑대와 토끼의 게임 - 아비코 다케마루(미스터리/추리소설)

by 김진격 2026.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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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 리뷰이므로 약간의 스포성 발언이 있을 수 있으나, 줄거리 반전 등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작성하였습니다.

 

[서평] 거장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 단조로운 게임, 아쉬운 반전 — 《늑대와 토끼의 게임》


1. 들어가는 말: 《살육에 이르는 병》의 거장이 던진 기이한 둔수(鈍手)


일본 미스터리계에서 아비코 다케마루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서술트릭의 불후의 명작이자 미스터리 역사에 강렬한 족적을 남긴 《살육에 이르는 병》을 비롯해, 독창적이고 섬뜩한 기믹으로 본격 추리의 묘미를 선보여온 신본격 1세대의 거장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신작이나 미번역작이 소개될 때마다, 장르 마니아들이 품는 기대치는 자연스럽게 극에 달하곤 한다.

그러나 소설 《늑대와 토끼의 게임》은 거장의 이름값을 믿고 책장을 덮은 독자들에게 깊은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안겨주는 아쉬운 작품이다.

동화적인 비유를 띤 제목처럼 포식자(늑대)와 약자(토끼)의 생존 서스펜스를 표방하며 출발하지만, 사건을 끌고 가는 인물 간의 구도가 지나치게 단조롭고 플롯의 입체감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본격 미스터리의 성패를 가르는 결말부의 반전마저 독자에게 별다른 지적 카타르시스나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 채 밋밋하게 마감되면서, 거장의 명성에 명백한 흠집을 남긴 아쉬운 콘셉트 소설로 기억되고 만다.

2. 줄거리

여름방학에 접어든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인 도모키의 집에 친구 고스모가 찾아온다. 고스모는 겁먹은 얼굴로 아빠 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컴퓨터를 망가뜨렸다며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도모키는 평소 꾀죄죄한 몰골에 거친 행동을 일삼는 고스모가 내심 부담스러웠지만, 엄마도 없이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를 외면하지 못하고 가까이 지내왔다. 이번에도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함께 고스모의 집으로 간 도모키. 그런데, 마당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서걱, 서걱, 젠장. 죽여버릴 거야.’ 집을 비웠다던 고스모의 아빠가 그곳에 있었다. 부자연스럽게 꺾여 널브러진 소년 곁에서……. 뜻밖의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에 휩싸여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 도모키와 고스모. 그리고 그 뒤를 쫓으며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시게오. 두 소년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괴물로부터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3. 장점 1: '포식자와 피식자'의 생존 게임이라는 서스펜스적 출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초반부에 선사하는 최소한의 미덕은, 약자와 강자의 대립 구도를 직관적으로 내세워 서스펜스를 유발하려 했던 설정에 있다.

제목에 명시된 '늑대'와 '토끼'는 작중에서 가해자인 범인과 약자인 아이들(혹은 피해자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대변한다. 압도적인 힘과 제어권을 쥔 범인의 위협 속에서, 무력한 아이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기회를 엿보는 과정은 초반부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한 장치다.

아비코 다케마루 특유의 간결하고 스피디한 문체는 초반의 상황 설정을 빠르게 전달하며, 독자로 하여금 포위망에 갇힌 아이들의 시선에 몰입하게 만드는 긴장감을 유도한다.

 


4. 장점 2: 아비코 다케마루 특유의 스피디한 가독성과 간결한 문체


또한, 작가가 지닌 서사 전개력의 내공 덕분에 텍스트 자체의 가독성은 뛰어난 편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전문 용어나 지루한 알리바이 해설로 페이지를 늘리지 않고, 상황 변화와 인물들의 직관적인 행동을 중심으로 사건을 거침없이 전개해 나간다. 두꺼운 추리소설을 읽기 부담스러워하는 독자라 할지라도 무리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을 만큼 문장의 템포가 빠르며, 상황의 변주를 연속적으로 배치하려 한 작가의 노력만큼은 수월한 독서감을 제공한다.


5. 아쉬운 점 1: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인 범인과 아이들의 대립 구조


그러나 이러한 최소한의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늑대와 토끼의 게임》은 극의 허리를 지탱해야 할 인물 간의 관계와 구도가 지나치게 단조롭고 일차원적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제목이 주는 압도적인 서스펜스에 비해, 작중에서 '늑대'로 묘사되는 범인과 '토끼'로 묘사되는 아이들의 대립은 수싸움의 밀도가 턱없이 낮다. 포식자인 범인은 압도적인 지능이나 입체적인 악의를 보여주지 못하고 전형적인 악역의 틀에 갇혀 있으며, 이에 맞서는 아이들 역시 입체적인 심리 변화나 정교한 협동을 보여주지 못한 채 평면적으로 소모된다.

좋은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물은 강자와 약자의 대립 속에서 양측의 지혜와 심리가 시시각각 충돌하며 입체적인 팽팽함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공방전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서만 맴돌기 때문에, 독자는 캐릭터들의 행동에 깊이 몰입하거나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기 어렵다. 두 집단 간의 체스 싸움이 밋밋한 단선적 구도에 그치면서 초반에 구축된 서스펜스는 중반 이후 급격히 동을 내버린다.


6. 아쉬운 점 2: 거장의 이름이 무색한,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밋밋한 반전


이 소설이 가장 크게 실망을 안겨주는 대목은 단연 결말부에서 드러나는 반전의 미지근함이다.

아비코 다케마루라는 이름 석 자를 접하는 독자들은 은연중에 그가 선사할 거대한 지적 충격이나 서술적 속임수, 혹은 판을 뒤엎는 기믹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결말에 배치된 반전은 독자의 감탄을 자아내기는커녕, "고작 이것뿐인가?"라는 허탈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지 못하다.

반전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전사(前史)의 복선이나 복잡한 층위가 부족하며, 드러난 진상 역시 장르적 쾌감을 주기엔 지나치게 밋밋하고 진부하다. 소설의 전반부에 걸쳐 축적된 수수께끼와 서스펜스를 한 방에 해결하거나 뒤집어엎어야 할 반전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서, 독자는 미스터리 소설이 선사해야 할 본연의 지적 카타르시스를 전혀 얻지 못하게 된다.


7. 총평: 거장의 아쉬운 소품, 무색해진 기대감


아비코 다케마루의 《늑대와 토끼의 게임》은 거장의 화려한 이름값과 독자들의 기대치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아쉬운 소품(小品)이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대립이라는 신선한 전제와 빠른 가독성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이끌어가는 인물 구조의 단조로움과 결말부 반전의 깊이 부족은 작품의 평가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살육에 이르는 병》이나 작가의 다른 시그니처 명작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서술트릭과 정교한 기믹을 기대했던 팬이라면 깊은 아쉬움과 실망감을 금할 수 없겠으나, 아비코 다케마루라는 거장의 커리어를 빠짐없이 탐색하고 싶거나 가벼운 서스펜스 소설 정도로 접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권할 수 있는 씁쓸한 아쉬움의 기록이다.

 


한 줄 요약: 빠른 가독성과 생존 게임이라는 초반 설정은 눈길을 끌지만, 범인과 아이들의 구도가 지나치게 단조롭고 결말의 반전마저 밋밋하여 거장의 이름값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 아쉬운 작품.

 

개인적인 평점

★★★★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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