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추리소설 리뷰이므로 약간의 스포성 발언이 있을 수 있으나, 줄거리 반전 등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작성하였습니다.
[서평] 심연을 들여다보는 싸늘한 눈동자, 잔혹함 속에 피어난 잔혹 미학 — 《GOTH》
1. 들어가는 말: 어둠 속에서 마주한 이색적인 끌림
국내 추리소설가를 대표하는 도진기 작가는 자신의 저서 《판결의 재구성》 등을 통해 오츠이치의 《GOTH》를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 미스터리로 극찬한 바 있다. 법과 정의의 테두리 안에서 판결을 다루어온 판사 출신 작가가 이토록 서늘하고 잔혹한 소설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단순한 자극성 스릴러를 넘어 미스터리 장르로서 지닌 구조적 완성도와 매력이 얼마나 독보적인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본격 미스터리대상을 거머쥐며 오츠이치라는 천재 작가의 이름을 각인시킨 《GOTH》는 제목 그대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취향(Gothic)과 잔혹성에 정면으로 집중한다.
신체 훼손, 연쇄살인, 장기 매매 등 지독하게 그로테스크한 범죄들이 줄이어 등장하여 한국 출간 당시 19세 미만 구독불가(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았을 만큼 지독한 잔혹성을 자랑하지만, 그 밑바닥을 지탱하는 것은 기존 추리물의 공식을 기분 좋게 뒤틀어버리는 '사이코패스 탐정'의 기발하고 우아한 수사극이다.
2. 줄거리
"죽이는 인간과 죽임을 당하는 인간이 있다. ……나는 전자다." 그런 자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나'는 밤과 어둠을 사랑하고 인간의 잔혹한 면을 들여다 보고 싶어하는 악취미를 가진 'GOTH'. 그런 본성을 숨기고 학급에서는 밝은 학생을 가장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언제나 외톨이로 지내고 있는 동급생 여자아이 모리노에게만은 본질을 간파당하고 있었다. '그 웃는 얼굴을 만드는 방법을 나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겠어?' 라며 다가온 그녀. 그렇다. 모리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 다만 그녀는 후자다. 죽임을 당하는 인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엽기적인 범죄현장 속으로 위험을 게의치 않고 자진해서 깊이 관련되어 가는 둘. 그것은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나 정의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잔혹한 사건과 범죄자에 대한 흥미 때문이다.
3. 장점 1: '정의'를 버린 사이코패스 소년 탐정, 기묘하고 매력적인 변주
이 소설이 선사하는 가장 독보적인 장점은 단연 주인공인 고등학생 소년 '카미야마 이츠키'라는 캐릭터가 가진 파격적인 설정과 이를 통한 서사의 변주에 있다.
전통적인 미스터리 소설 속 탐정들은 정의감,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 혹은 범죄를 단죄하려는 사명감으로 사건에 개입한다. 하지만 《GOTH》의 주인공 소년은 정반대다. 그는 타인의 고통에 완벽하게 무감각하며, 자신과 같은 '어둠과 악의'를 지닌 연쇄살인마들에게 기묘한 친밀감과 호기심을 느끼는 철저한 사이코패스다.
소년은 피해자를 구하거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건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살인마들이 저지른 잔혹한 아트(Art)와 그들의 비틀린 심리를 관찰하고, 그 전말을 누구보다 먼저 확인하고 싶다는 이기적이고 사이코패스적인 욕망만으로 수수께끼에 접근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비틀린 시선은 전형적인 'Whodunit(범인은 누구인가)'이나 'Whydunit(왜 저질렀는가)'의 구도를 완벽하게 뒤흔든다. 탐정이 범인보다 더 서늘한 악의의 감각을 지닌 채 사건을 해체해 나가는 이 기묘한 공방전은, 기존 탐정물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색다른 지적 쾌감과 서스펜스를 안겨준다.
4. 장점 2: 단편집을 관통하는 정교한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성
자극적이고 잔혹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이 작품이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각 단편을 지탱하는 트릭과 반전의 논리적 뼈대가 대단히 탄탄하기 때문이다.
소설에 수록된 6편의 연작 단편들(〈리스트컷 증후군〉, 〈개〉, 〈기억〉, 〈흙〉, 〈암흑계〉, 〈목소리〉)은 저마다 독특한 기믹과 서술적 속임수, 그리고 인과관계의 반전을 품고 있다. 작가 오츠이치는 단지 불쾌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인물의 심리적 사각지대나 문장 속에 숨겨둔 복선들을 정교하게 회수한다.
스토리 후반부에 이르러 인물들의 관계나 과거의 상처, 그리고 사건의 진짜 내막이 투명하게 펼쳐지는 순간 밀려오는 반전의 파괴력은, 이 책이 그저 스플래터 무비 같은 자극성에 기댄 책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본격 퀴즈 소설'임을 입증해 준다.
5. 주의점 및 한계: 19금 딱지가 증명하는 극단적인 잔혹성과 취향의 진입 장벽
그러나 이 작품이 가진 뛰어난 장르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일독에 앞서 독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될 만큼 짙은 잔혹성과 가학성은 명확한 호불호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서 19금 딱지를 달고 출간된 만큼, 작중 묘사되는 범죄의 수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신체를 절단하고 소장하는 비틀린 수집욕, 살인을 일종의 유희나 예술로 소비하는 가해자들의 심리, 아동이나 약자를 향한 잔혹한 고문과 매장 등 잔혹 영화를 연상시키는 고어(Gore) 요소들이 텍스트 전체에 가득하다.
잔혹한 연출에 면역이 없거나, 비윤리적인 캐릭터들의 행동에 극심한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라면 아무리 트릭이 정교할지라도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서늘한 미학이라는 포장지 뒤에 엄연히 잔혹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장르 마니아라 할지라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분명한 마이너스이자 경고 지점이다.
6. 총평: 어둠의 심연 속에서 건져 올린 기괴하고 아름다운 수작
오츠이치의 《GOTH》는 추리소설이 지닌 정교한 논리성과,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Goth)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충돌하여 탄생한 미스터리 문학사의 유일무이한 수작이다.
도진기 작가를 비롯해 수많은 장르 애호가들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의로운 탐정'이라는 오랜 클리셰를 비틀어 사이코패스 소년의 서늘한 시선으로 사건을 변주해 낸 작가의 천재성, 그리고 텍스트 뒤에 매설해 둔 정교한 반전의 맛이 너무나도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19금 딱지가 붙을 만큼 잔혹한 묘사와 비틀린 소재들로 인해 일독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어둡고 서늘한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기발한 수수께끼 풀이를 견뎌낼 수 있는 독자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압도적인 장르적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한 줄 요약: 도진기 작가가 극찬한 명작으로, 19금 딱지가 붙을 만큼 잔혹한 묘사가 가득해 일독에 주의가 필요하지만, '사이코패스 소년 탐정'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활용해 사건을 정교하게 풀어가는 서늘한 변주가 독보적인 오츠이치의 연작 미스터리.
개인적인 평점
★★★★★★★★★☆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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