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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소설

[소설 리뷰/서평] 전원 범인, 하지만 피해자, 게다가 탐정 - 시모무라 아쓰시(미스터리/추리소설)

by 김진격 2026.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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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 리뷰이므로 약간의 스포성 발언이 있을 수 있으나, 줄거리 반전 등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작성하였습니다.

 

[서평] "내가 범인이다!" 역발상이 쏘아 올린 기발함, 그리고 헐거운 논리의 한계


1. 들어가는 말: 추리소설의 클리셰를 뒤흔든 파격적인 질문


미스터리 장르의 역사는 '밀실'과 '알리바이'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통 본격 추리소설 속 가해자들은 언제나 범행 현장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시해 법망을 벗어나려 애쓴다. 탐정의 역할은 그 완벽해 보이는 거짓의 장막을 찢어발기고 숨겨진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시모무라 아쓰시의 《전원 범인, 하지만 피해자, 게다가 탐정》은 시작부터 이 오랜 장르적 클리셰를 완전히 뒤집어엎는다. 만약 범인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내가 범인이다!"라고 절박하게 부르짖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은 "오직 범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기묘하고도 파격적인 생존 규칙을 전면에 내세운다. 살기 위해 가해자가 되어야 하고, 타인을 살리기 위해 그 사람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기괴한 무대. 이 기발한 전제는 오랜 시간 정형화되어 있던 본격 미스터리의 판도를 순식간에 뒤흔들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줄거리


“48시간 후 모두 죽는다. 단, 진짜 범인만 살려주겠다.”
지금부터 살기 위한 ‘자백 게임’이 시작된다.

깊은 산속, 정체불명의 폐허. 그곳에 ‘익명의 편지’를 받고 불려 온 7명의 남녀가 모였다. 어느 회사의 개발부 과장, 영업부 부장, 청소부, 운전기사, 사장의 아내, 그리고 피해 유족 대표와 프리랜서 기자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모두 한 남자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제품 결함으로 사망 사고를 일으킨 한 기업의 사장이 사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누군가는 그 죽음이 ‘살인’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지금 폐허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들 중에 범인이 있다. 범인만 살려 주겠다.” 믿기 힘든 상황 속에서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사장을 죽였습니다.” 이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진짜 범인임을 증명하는 것뿐이다.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2. 장점 1: 범인 입증의 생존 게임, 역발상이 선사하는 색다른 오락성


이 작품의 가장 독보적인 성취는 미스터리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를 180도 뒤집어 버린 '역발상의 세계관'에 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가해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자신의 무결함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무대에서는 오직 사건의 '진범'으로 인정받은 자만이 생존의 기회를 얻는다. 그 결과, 폐쇄된 공간에 갇힌 인물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어떻게든 자신이 범인이어야만 하는 기괴한 논리와 궤변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반대로, 상대를 살리거나 혹은 자신이 범인 자리를 독점하기 위해서 타인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정반대의 추리가 동시에 펼쳐진다. 내가 범인임을 증명하려는 자와, 너는 범인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하는 자들의 공방전. 범인을 찾기 위한 추리가 아니라 '상대가 범인이 아님을 밝히기 위한 역추리'가 펼쳐지는 이 기이한 생존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 독자에게 유쾌하고도 서늘한 장르적 쾌감을 안겨준다.

 


3. 장점 2: 시대를 반영한 '다중추리'의 구성과 독특한 인물 군상


모두가 스스로를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무대 구조상,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최근 미스터리계의 가장 뜨거운 트렌드인 '다중추리(Multiple Deductions)'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한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인물이 각기 다른 가설과 정황을 내놓으며 진상을 재구성해 나가는 다중추리는, 독자로 하여금 퍼즐의 조각들이 번갈아 맞춰지는 지적 유희를 느끼게 한다. 이 작품 역시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스스로를 범인으로 전제한 채 각자의 가설을 던지고, 뒤이어 다른 인물이 그 가설의 허점을 지적하며 또 다른 가설을 덧씌우는 릴레이 구조를 취한다.

여기에 '전원 범인이자 피해자, 그리고 탐정'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인물들이 가진 복잡하게 꼬인 이해관계와 이기적인 욕망이 드러나는 과정은 훌륭한 캐릭터극으로서의 오락성을 더해준다.

 


4. 아쉬운 점: 다중추리의 본질을 갉아먹은 '범인호소인'들의 헐거운 논리


그러나 이처럼 눈부신 아이디어와 파격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전원 범인, 하지만 피해자, 게다가 탐정》은 본격 미스터리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뼈아픈 한계점과 아쉬움을 노출한다.

다중추리라는 장르가 독자에게 주는 본질적인 쾌감은 '누가 보아도 허점이 없어 보이는 촘촘하고 완성도 높은 가설을, 또 다른 누군가가 정밀한 논리로 간파하여 차갑게 깨부술 때' 나온다. 가설과 반론이 모두 단딴한 논리의 뼈대를 갖추고 있어야만 팽팽한 지적 텐션이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스스로 범인임을 강변하는 이 일명 '범인호소인'들의 주장은 다중추리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지나치게 헐겁고 비약이 심하다. 인물들이 제기하는 가설들은 정교한 수싸움이라기보다는 억지스러운 궤변이나 자의적인 정황 해석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주장 자체가 논리적 구멍투성이다 보니, 상대방이 그 가설을 파쇄하고 리타이어 시키는 과정 역시 상쇄의 카타르시스보다는 황당함과 허탈함을 자아낸다. 잘 짜여진 뇌지컬 배틀을 기대했던 본격 미스터리 마니아들의 시선에서는, 정교한 논리 대결이 아니라 허술한 가설들이 의미 없이 헛바퀴를 도는 듯한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결정적인 약점이다.

 


5. 총평: 기발한 포장지와 밋밋한 알맹이의 기묘한 공존


시모무라 아쓰시의 《전원 범인, 하지만 피해자, 게다 탐정》은 아이디어와 기획의 참신함만큼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범인만이 살아남는다"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정통 추리물의 공식을 뒤집고, 사법적·윤리적 클리셰를 비틀어버린 작가의 순발력은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그러나 미스터리 소설의 진짜 생명력은 기발한 무대 장치 그 자체보다, 그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트릭의 정교함'과 '논리의 밀도'에서 나온다. 가설을 세우고 이를 파괴해 나가는 다중추리의 핵심 뼈대가 지나치게 헐겁게 조립되어 있다 보니, 초반부의 신선했던 설정이 주는 충격은 중반 이후 빠르게 동나버리고 만다.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 싸움의 정수를 기대한 독자라면 깊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겠으나, 미스터리의 전형적인 틀을 깬 참신한 콘셉트와 가볍고 스피디한 역발상 오락 소설을 원했던 독자라면 한 번쯤 부담 없이 읽어볼 만한 이색적인 작품이다.



한 줄 요약: "범인만 살아남는다"는 역발상의 설정과 참신한 구도는 대단히 독창적이었으나, 다중추리의 핵심인 '범인호소인'들의 논리가 지나치게 허술하여 지적 카타르시스 면에서 뚜렷한 아쉬움을 남긴 콘셉트 미스터리.

 

개인적인 평점

★★★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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