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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소설

[소설 리뷰/서평] 디스펠 - 이마무라 마사히로(특수설정 호러 미스터리/추리소설)

by 김진격 202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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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 리뷰이므로 약간의 스포성 발언이 있을 수 있으나, 줄거리 반전 등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 작성하였습니다.

 

[서평] 괴담의 문을 두드린 본격의 논리, 그러나 소년 탐정단에 갇힌 한계 — 《디스펠》

 

1. 들어가는 말: 특수설정의 기수가 던진 '호러와 본격'의 융합  

《시인장의 살인》으로 본격 미스터리 랭킹 4관왕에 오르며 현대 특수설정 미스터리의 붐을 이끌었던 이마무라 마사히로. 그가 '겐자키 비루코 시리즈'의 외연을 벗어나 발표한 신작 《디스펠(でぃすぺる)》은 제목(Dispel: 주문을 풀다, 의혹을 떨쳐버리다)처럼 오컬트와 본격 미스터리의 경계를 겨냥한 야심 찬 도전작이다.

 

  미스터리계에서 '호러와 추리의 결합'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장은 단연 미쓰다 신조다. 미쓰다 신조가 토속 신앙과 오컬트라는 으스스한 공포의 무대 위에 정통 본격의 밀실과 알리바이 트릭을 녹여내는 스타일이라면, 뼛속까지 본격 미스터리 작가인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접근법은 그 반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즉, "호러라는 기괴한 초자연적 현상을 본격 추리의 명징하고 차가운 논리로 어떻게 해체하고 흡수할 것인가"라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뚜껑을 연 소설은 매력적인 괴담과 팽팽한 논리 대결로 산뜻하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아동문학을 연상시키는 소년 탐정단의 모험극으로 평이하게 흘러가며 거장의 신작이라 부르기엔 짙은 아쉬움을 남기고 만다.  

2. 줄거리

 여름방학이 끝난 2학기 첫날, 오컬트 애호가 ‘유스케’와 어느 모로 보나 현실주의자인 ‘사쓰키’, 아직은 존재감이 희미한 전학생 ‘미나’가 학급 신문을 핑계로 마을의 7대 불가사의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셋의 목적은 서로 다르다. 유스케는 괴담 추적이라는 장기를 뽐내고 싶어하고, 사쓰키는 미제사건으로 남은 사촌 언니 마리코의 죽음에 답을 얻고자 하며, 미나는 두 사람의 설전을 한발 물러서 판정한다. 세 사람은 산속 터널과 폐허가 된 종교시설, 댐과 우물 등 마리코가 생전에 남긴 파일 속 장소들을 조사하며 오컬트와 현실이라는 두 가지 가설을 나란히 세우고 서로의 빈틈을 집요하게 논박한다. 그렇게 가설에 가설이 쌓이고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지며 1년 전 마리코의 죽음이 현재를 물들인다. 마침내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일곱 번째 불가사의를 알면 죽는다”는 경고가 차가운 실체를 드러내는데….

3. 장점 1: '7대 불가사의'라는 괴담과 미제 살인 사건의 흥미진진한 교차

 소설의 전반부를 지탱하는 가장 독보적인 장점은 단연 어느 시골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7대 불가사의' 괴담을 살인 사건의 퍼즐로 정교하게 끌어들인 도입부의 흡인력이다.  소설은 초등학교 6학년인 오컬트 애호가 '유스케', 모범생이자 현실주의자인 '사쓰키', 그리고 냉철한 관찰자 전학생 '미나' 세 아이가 학급 신문 게시판 담당이 되면서 시작된다. 1년 전 눈밭 한가운데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사촌 언니의 미제 살인 사건, 그리고 언니의 컴퓨터에 남아 있던 기묘한 '7대 불가사의' 파일.  산속 터널, 버려진 폐종교 시설, 저수지 댐과 깊은 우물 등 마을의 심령 스팟들을 탐색하며 괴담 뒤에 숨겨진 메시지를 쫓는 여정은 고전적인 괴담 미스터리의 오싹하고 서늘한 재미를 훌륭하게 자아낸다.  "괴담은 실제 원혼의 짓이다"라고 주장하는 오컬트적 가설과, "괴담의 형식으로 숨겨둔 범인의 단서다"라고 반박하는 현실적 논리가 팽팽하게 부딪히는 초반부의 공방전은 이마무라 마사히로 특유의 지적 유희를 기대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4. 장점 2: 본격 미스터리의 뼈대를 지키려는 논리적 징검다리

 또한 작가는 호러와 오컬트라는 미지의 영역을 다루면서도,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초자연적 현상에 기대어 사건의 진상을 흐지부지 덮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고, 세 아이가 나누는 문답과 소거법을 통해 불가능 범죄의 사각지대를 하나씩 지워나간다. 괴담의 문구 하나하나를 논리적으로 재해석하여 과거의 눈 밀실 살인과 연결 짓는 작가의 플롯 구성력은, 그가 왜 특수설정 미스터리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작가인지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미덕으로 작동한다. 

 5. 아쉬운 점: '소년 탐정단'의 유령 퇴치기로 전락한 후반부의 아동문학적 한계  

 그러나 이러한 흥미로운 전제와 초반의 서늘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내는 중후반부에 이르면 소설의 장르적 긴장감은 급격하게 무너져 내린다.  가장 큰 패착은 본격 미스터리 특유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서스펜스 대신, 초등학생 주인공들이 겪는 유령 퇴치 모험기나 가벼운 쥬브나일(아동·청소년 문학)의 틀로 급격히 기울어버렸다는 점이다.

 

  살인 사건이라는 잔혹하고 무거운 진상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난관을 돌파하고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순진무구한 아동 만화처럼 전개된다. 어른들의 악의나 현실의 무게감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채 아이들의 '학급 신문 탐정 놀이' 수준의 톤 앤 매너가 극 후반부까지 이어지다 보니, 본격 추리물로서의 날카로운 쾌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처럼 심장을 죄어오는 원초적인 공포감도, 혹은 시인장 시리즈처럼 턱이 빠질 듯한 파격적인 트릭의 임팩트도 주지 못한 채 애매한 '어린이용 미스터리 모험물'로 귀결되어 버린 결말은 성인 장르 마니아들에게 커다란 허탈함과 밋밋함을 안겨준다.  

 6. 총평: 신선한 시도 뒤에 남은 평이한 결과물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디스펠》은 본격 미스터리가 호러와 오컬트(7대 불가사의)라는 매혹적인 소재를 흡수하려 했던 야심 찬 실험작이다.  초반부 마을의 괴담을 파헤치며 논리와 오컬트가 충돌하는 순간의 흡인력은 분명 매력적이었으나, 후반부를 지탱하는 서사의 깊이가 아동문학적인 소년 탐정단 수준에 머무르면서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완성하는 데는 명백히 실패했다.

 

  결국 "호러를 본격 추리로 녹여내려 했던 시도는 매우 참신하고 좋았으나, 결과물은 다소 싱겁고 아쉬웠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 작품이다. 가볍고 발랄한 학원 쥬브나일 미스터리를 찾는 독자라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겠으나, 《시인장의 살인》이나 묵직한 호러 미스터리의 파괴력을 기대했던 팬이라면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될 아쉬운 신작이다.

 

  한 줄 요약: 7대 불가사의라는 매혹적인 괴담과 본격 추리의 논리를 결합하려 했던 시도는 신선하고 돋보였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아동문학 같은 '꼬마 탐정단의 유령 퇴치기'로 평이하게 흘러가며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놓쳐버린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아쉬운 도전작.  

 

개인적인 평점

★★★★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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